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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바르셀로나] 라자르테 Lasarte 레스토랑 방문기

circle84 2023. 2. 1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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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으로 갔던 망통에서 Mirazur 라는 미슐렝 2스타 레스토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참고 - [2017][FRANCE] 망통 - MIRAZUR Restaurant)

비수기의 한적한 시골마을 끝자락에 위치했지만 입구에서 만난 매니저의 환대에서부터 마지막 쁘티 포가 나올때까지 모든 순간이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고, 언제나 그 여행을 추억할 때마다 그 날의 식사가 떠오르곤 했다. 

2년 쯤 지나 그곳이 3스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때 그럴만 하다, 과연 "그 곳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할" 식당이란 그런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바르셀로나에 오면서도 그런 식당을 하나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바르셀로나에는 3개의 3스타 레스토랑이 있었다. 

Cocina 는 살짝 숙소와 먼 감이 있었고, ABaC 의 경우 접근성도 그렇지만 메뉴 자체가 살짝 아시안 퓨전의 느낌이 났다. 

서양인들이라면 매우 색다르겠지만 한국인인 내 눈에는 그냥.. 우리나라에서도 조금 욕심내면 접할 수 있는 퓨전 아시안의 느낌이랄까.. 하여 영 손이 가지 않았다. 

라사르테 홈페이지, 이 곳에서 예약도 진행 가능하다.

 

그리하여 관심이 간 곳은 라사르테. 2006년에 처음 문을 열고 2017년에 3스타를 획득한 레스토랑이다. 

이 곳의 셰프인 Martin Berasategui 는 이 곳 외에도 많은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데 각각 미슐랭 스타를 획득하여 2022년 기준 12개의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고, 라사르테는 그의 3 스타 레스토랑 두 곳 중 하나라고 한다. 

또 다른 3스타 레스토랑은 그의 플래그십 레스토랑인 Martin Berasategui  레스토랑 (산 세바스티안) 이다.

 

예약은 인터넷으로도 가능하긴 한데, 연말 + 원하는 일정이 금요일이었던 관계로 예약이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와이너리 투어의 가이드이기도 했던 현지 소믈리에 분께서 이 곳에 근무 경력이 있으셨던지라 도움을 받아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따로 예약을 한다면 일정을 여유를 두고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 할 듯 싶다. 

 

라사르테는 모뉴먼트 호텔 내에 위치하고 있어 오픈 전 도착한 경우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면 된다. 

 

예약 당일, 시간에 맞춰 라사르테로 향했다. 

라사르테 레스토랑은 바르셀로나의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 한복판의 5성 호텔인 모뉴먼트 호텔에 자리하고 있어 가기에도 편리했다. 

예약시간 8시에서 10분정도 여유를 두고 도착했는데, 레스토랑 앞의 로비에는 이미 입장 대기중인 손님이 많았다. 

입장하여 귀여운 오징어 장식이 놓인 자리로 안내 받았다. 

식전주로 까바가 제공되었는데, 살짝 로즈색이 돌며 강렬하고 미려한 기포를 뿜어 모양부터도 아름다웠고 

맛도 산뜻하면서 바닐라 질감의 향이 올라와 기분이 좋았다. 

마침 어제 갔던 와이너리 투어에서 설명 들었던 좋은 스파클링 와인에서 나타난다는 풍성한 버블과 잔 가장자리의 크라운이 명확히 보였다. 

 

오기 전에 현재 이 레스토랑의 총지배인이 와인에 조예가 깊어서 스페인 와인 뿐만 아니라 프랑스 등 다양한 지역의 와인리스트를 풍부히 갖추고 와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백과사전 같은 두꺼운 와인리스트가 건네졌다. 

다른 자리에서는 와인에 관심이 좀 있는 커플인지 이걸 정독하느라 10분이 넘도록 주문을 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ㅋㅋ 

사진을 찍으라고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와인이 이상없다고 오케이 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였다. 

프리오랏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나서 해당 지역의 와인을 골랐다. 

가르나차 품종의 와인이었는데, 잔 입구에서부터 올라오는 다양한 스파이스와 과일향이 인상적이었고 
막상 마셨을땐 그렇게 부담스러운 무게감 없이 가벼운 느낌이 들면서도 목을 넘길땐 무거운 바디감이 느껴졌다. 

가벼운 맛인데 중간 이상의 바디감.. 이라는게 참 뭔가 모순된 표현이긴 한데, 마셨을 땐 그랬다. 

에피타이저 

처음 나온 계란찜 처럼 보이는 것은 크림 스프 같은 것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밑바닥에 익숙한 매콤하고도 신 맛이 느껴졌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김치였다 

(정확히 김치를 썼는지 비슷한 맛의 다른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

이것 만으로도 이미 즐거워지기 시작해 버렸다. 

에피타이저를 마치고 나니 오늘의 코스를 정리한 메뉴시트를 주었다. 

먹고나면 뭐였는지 모르겠는 경험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종종 하는데 이런 세심함이 좋다. 

이 빵을 어떻게 참지... 

거대한 카트에 산더미처럼 쌓여 온 식전빵. 미리 들은 꿀팁(?)은 이 빵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로 나올 음식이 너무너무 많기 때문에 빵 욕심을 내다간 끝까지 갈 수 없다고 (...) 

 

사진으로는 미처 못 찍었지만, 오색의 맛난 버터보다 저 빵을 더 못 참게 한건 의외로 올리브유였다. 

발사믹 조차 섞지 않은 아주 깨끗하고 싱싱한 올리브유를 내 오는데 
정말 올리브유가 이렇게 맛있는 기름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싱그러운 향과 부드러운 질감에
빵이 아니라 그 기름을 먹고 싶은 충동이 더 참기 힘들었다. 

 

그라니타(슬러시)를 곁들인 절인 굴요리, 콩피 방식으로 조리한 대구요리를 시작으로 계란 노른자를 얹은 오징어 타르타르 (오징어회에도 계란 노른자가 잘 어울린다는 발견..!) , 새우 스프와 해산물 샐러드, 캐비어를 얹은 와규 라비올리와 장어 요리, 랍스터 펜넬 리조또가 이어졌다. 

오징어회, 새우 요리, 해삼, 성게알, 대구, 굴 같은 한국에서도 친숙한 재료들이 많이 보이면서도 전혀 처음보는 형태와 맛의 요리들로 눈과 입이 즐거운 시간. 

오늘의 메인은 감과 당근이 곁들여진 사슴고기 스테이크. 

당근과 감 이라고는 하지만 여러 방법으로 졸이고 요리되어 그것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메인과 잘 어우러졌다. 

메인인 사슴고기는 사실 처음 먹어봤는데, 전반적으로 말고기처럼 기름기 없이 씹는 맛 좋은 질감의 육질이었고
사슴고기 특유의 향으로 생각되는 누린내가 살짝 나는 느낌이었는데,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수 있겠다 싶었으나 개인적으로는 매우 취향에 맞았다. 

디저트로 나온 시나몬 , 귤 구슬. 저 구슬 같은 것들이 각각 시나몬, 귤 향이 나는 쫀득한 타피오카 질감의 .. 젤리 같은 구슬이었는데 매우 독특한 식감이 재밌었다. 

이어서 마무리 쁘띠 포와 초콜릿.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입안에 가득차는 달콤함이 좋았다. 

 

혹자는 깨작깨작 얼마 나오지도 않고 예쁘기만 한 코스에 인당 수십만원을 태우는 파인다이닝을 불필요한 사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아름다움 자체와 그저 아름답고 끝이 아닌 요리사들의 고민과 연구의 끝에 완성된 다른 곳에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맛과 해석을 느껴보는 것이 파인다이닝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하는 편인데 

이번 라자르테의 경험은 그 생각에 300% 부합하는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그 가격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수는 있겠으나 .. 바르셀로나를 찾으며 미식 쪽으로 좋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라자르테는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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